안녕하세요 스페인자전거나라 이희근 가이드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스페인의 도시는 어디일까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많은 도시가 떠오르지만 스페인 관련 책을 보다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스페인의 도시 1위는 세비야”
세비야는 참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 과거와 현대의 건축물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도시.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가도 정말 좋은 도시이지만 저는 여름의 세비야를 좋아합니다.
세비야의 여름은 참으로 덥습니다. 머리가 타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름의 세비야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떤 단편소설 때문입니다.
방구석 스페인여행, 일곱 번째 작품은 단편소설
『콜럼버스의 뼈』입니다.
(출처-YES24)
『도시와 나』는 정미경, 성석제, 함정임, 백영옥, 서진, 윤고은, 한은형 이렇게 7명의 작가가 해외 도시를 배경으로 쓴 단편소설 7편을 모은 소설집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행소설집으로 에세이가 아닌 소설로 만나는 도시의 모습은 정말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 책에 있는 작품들 모두 사랑하지만 저는 그중 스페인 세비야를 배경으로 한 윤고은 작가의 『콜럼버스의 뼈』를 좋아합니다.
이야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콜롬은 말했다. 시에스타는 도둑처럼 찾아온다고.
주인공은 오랜 기간동안 친부모를 찾아왔습니다. 양부모님과 함께 잘 살아왔기에 친부모의 존재를 잊고 지낸 적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습관처럼 친부모를 찾습니다.
친부모를 찾는 동안 그녀가 깨달은 사실은 딱 하나, 30년동안 친부모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는 것.
이 사실을 알면서도 친부의 주소일지도 모르는 주소를 받아 적습니다.
그 주소가 바로 스페인 세비야.
한 번도 그들이 한국을 벗어났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기에 놀랐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헛걸음과는 다를 거라는 기대를 품고 여름휴가 열흘을 만들어 스페인으로 떠납니다.
열흘의 여행중 7일째 되던 날까지 그녀는 주소 속 장소를 찾지 못합니다.
어디에 물어봐도 모르는 주소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관공서에 가 봐도 택시 기사나 음식점 주인에게 물어봐도 이런 주소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대답이 돌아오죠.
그렇게 7일째 되던 날. 마차의 마부가 그 주소를 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찾아간 주소에서 만난 남자
콜롬. 60년 평생 그 집에서 산 콜롬은 주인공이 보여준 아버지 사진을 보며 모르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는 그녀가 찾는 주소와 자신의 집 주소가 비슷하지만 다르다고도 이야기해줍니다.
여름 한낮의 세비야는 너무나 더워서 길에는 사람도 택시도 없고, 콜롬도 그녀에게 이 시간에 돌아다니면 쓰러질지도 모르니 택시가 올때까지 집에서 기다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콜롬이 그녀의 목적지를 물었을 때 세비야 대성당까지 가겠다고 이야기하자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콜롬은 대성당 안에 있는 ‘콜럼버스의 뼈’에 대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세비야 대성당 안에는 신항로를 개척했던 항해사 콜럼버스의 묘가 있는데 시실은 그 묘가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것에서 비롯된 이야기.
이 모든 것은 콜럼버스가 자신의 출신지를 숨겼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는데 몇 세기 동안 계속되어오던 콜럼버스에 대한 논쟁들을 검증하기 위하여 2003년에 콜럼버스의 묘를 파헤쳤다는 이야기.
그리고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지에서 콜롬이나 콜롬보, 콜론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 1천명이 자신의 DNA를 자료로 제공한 이야기. 콜롬의 가족도 DNA를 보냈다는 이야기.
이야기의 중간에 택시가 도착하여 그녀는 결론을 듣지 못하고 콜롬의 집을 나서게 됩니다.
택시를 타고 가 대성당 안에 있는 콜럼버스의 묘를 보고, 다시 한번 관공서로 가 주소를 찾아보는데요.
그 주소는 결국 다시 콜롬의 집 앞으로 그녀를 인도합니다. 그렇게 그녀는 콜롬의 대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죠.
그리고는 콜럼버스 이야기의 마지막을 듣게 됩니다.
결론은, “과학은 시간으로 완성된다.”
2003년 콜럼버의 관을 열었을 때 그 뼈에서 아무런 결과를 얻을 수 없었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이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묘하게 자신과 자신 아버지의 이야기와 닮은 것 같아 위로를 받습니다.
책에는 ‘세비야를 가면 꼭 봐야할 곳’과 같은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장들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세비야의 여름, 그 뜨거운 태양을 직접 느끼고 싶어 집니다.
너무 뜨겁기에 모두가 휴식을 취하는 시간, 도시가 잠드는 시간 ‘시에스타’
모든 걸 녹여 버릴 것 같은 햇빛 아래에서 반짝이는 도시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언젠가 세비야를 가신다면
한번쯤은 세비야 대성당의 지붕 위에 올라가서 도시를 보시길.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골목, 그 모습을 오랜 세월 지켜보고 있는 대성당.
그 시선에서 도시를 바라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은 제가 좋아하는 문장으로.
불면에 시달리는 나와 달리 이 도시는 두 번도 더 잠들었다.
오후의 몇시간 그리고 밤의 몇 시간.
나는 어떤 쪽으로도 이 도시에 흡수되지 못하고 거리의 먼지처럼 떠다녔다.
땅이 가장 뜨겁게 달궈진 오후,
그 몇시간의 공백에는 노면전차의 철로만 태양 아래서 뜨거운 숨을 쉬었다.
도시의 풍경이 한순간, 마치 퓨즈가 나간 것처럼 뚝 끊기는 것이다.
그러고는 관광객들만 이 잠든 도시를 순례한다.
바로 지금과 같은 순간을 걷고 있으면,
어느 순간 단지 빛만으로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콜럼버스의 뼈
*정미경 외 6인, 『도시와 나』 ©바람